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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공유재산이 진짜 공유재가 되려면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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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5년 8월 5일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국 농촌에 3만 개도 넘을 마을회관을 생각해보자.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관리하는 자산이다. 그걸 팔아서 주민 50명이 1/50씩 현금으로 나누어 가질 수는 없다. 법률상 가능하더라도 그런 일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런 종류의 자원을 ‘공동 풀 자원(common pool resource)’, 흔히 커먼즈(commons) 혹은 공유재라고 한다. 주민들은 그런 공유재를 지속 가능하게 잘 활용하려고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지킨다. 가령, 마을회관에서 모임을 하고 나면 그 참석자들이 청소한다거나, 매달 청구되는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을 마을기금으로 납부한다거나, 마을회관 앞마당과 주변을 제초하고 청소하는 일에 주민 여럿이 봉사한다는 식이다.


이런 규칙은 어떻게 만든 것일까? 어느 날 마을총회를 열어 주민들이 합의하고 서명한 협약서 같은 게 있을까? 그런 일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이장이 독단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실행하는 걸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개는 평소에 서로 이야기한 대로의 ‘합의’를 지키는 것이다. 공식적인 회의 절차가 없어도 공동의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가능하다. 그 자산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적고 그들이 가까운 이웃 관계를 이루며 일상적으로 만나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행정리)에서는 공동의 자산을 그렇게 관리할 수 있지만, 범위를 넓혀보면 어떻게 될까? 지난 10여 년 동안 전국 읍면에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또는 ‘기초거점시설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국고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들여 지은 건물이 1,000개 안팎에 이른다. 대체로 사무실, 회의실, 강의실 등으로 구성된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의 형식이다. 즉, 읍면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설계한 것들이다.


그 이용 실태가 정확하고 상세하게 드러난 바 없지만, 수십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이 그냥 놀고 있다거나 전기요금을 감당하기도 어려워 문을 닫은 상태라는 소문은 쉽게 접할 수 있다. ‘○○면 다목적센터’라는 식으로 이름 붙인 건물이 사실상 ‘휴업 상태’인 경우가 수백 개는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토건국가 모델을 폐기해야 한다’는 거창한 주장에서부터 ‘최소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시군청에서 내 주어야 한다’는 소박한 건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장이 제출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애초에 활용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건물부터 지은 게 문제다. 물론, 사업계획서에 이러저러한 용도로 건물을 사용할 것이라고 써서 농림축산식품부에 제출하고 국비 예산을 지원받지만, 그 활용계획은 미사여구일 뿐이다. 그 계획대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벌칙이 부과되는 것도 아니다. 시골을 다니다 보면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억 원 확보!’라고 써 붙인 펼침막을 자주 본다.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으로 주민 ○○○명에게 건강교육 프로그램 실시!’라는 식의 펼침막은 본 적이 없다. 건물 지을 예산을 따오는 것이 목적이지, 건물을 지어 주민이 잘 이용하는 게 목적은 아닌 것이다.


둘째, 국고 보조금이 투입되어 조성한 건축물을 사용하는 데에는 일정한 제약이 따르는데, 그것을 따져보지 않은 채 일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과 ‘지방재정법’에서는 보조금으로 조성한 시설물에서 수익사업을 하는 행위는 ‘목적 외 사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법하며 제재 대상으로 규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수익사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문제가 있다. 가령, 기초거점시설조성사업으로 조성한 다목적센터의 사용허가(흔히 하는 말로, 무상임차)를 받은 주민단체가 다른 주민들을 대상으로 요가 강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참가비로 1인당 3만 원씩을 받으면 수익사업일까? 그렇다. 수익사업으로 간주된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수익사업이라고 판단해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라며 금할 것이다. 그 건물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아도 안 된다. 지역사회의 어느 단체가 그 건물에 세를 내고 입주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돈 받는 일을 하면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법령 해석이 옳지 않은 데다가, 그럴 수밖에 없다면 애초에 각종 ‘소프트웨어(프로그램)’를 실행할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마련해 두고 나서 건물을 지어야 할 텐데 꼭 그렇지도 않다. 이 정책사업의 근본 목적은 시설을 짓는 것이지 그것을 운영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어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런 문제에 깊게 관여하기도 어렵다.


셋째,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합법적으로 해결할 방도가 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이지 않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르면, 그렇게 세금으로 조성한 건물을 행정재산으로 등록하여 지방자치단체 소유라는 의미의 ‘공유재산’이 되면 사용허가나 대부계약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를 민간에 위탁할 수도 있다. 위탁하는 경우 시설 이용료를 관리 위탁받은 행정재산(건물)의 관리에 드는 경비에 충당하거나 관리 위탁받은 자(주민단체)의 수입으로 할 수 있다. 심지어는 관리위탁을 받은 자(주민단체)에게 관리 경비를 지방자칭단체가 지원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결정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에 속한다. 즉, 시장이나 군수가 마음먹으면 건물이 활용되지 못하고 썩는 것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고를 일부분 들여 지은 건물이 ‘놀지 않게 관리위탁을 주도록’ 강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들 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건물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상 이 공유재산은 지방자치단체의 소유이지만, 군수나 군청 담당 과장 개인의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주민의 것은 당연히 아니다.


20여 년 동안 계속된 ‘세금으로 건물 짓기 – 지은 건물 방치하기 – 세금 낭비라고 비판받지만 또 세금으로 건물 짓기’의 악순환이 구조화된 배경에는 ‘진정한 주인 없음’이라는 문제가 있다. 사실, 마을회관의 경우도 진정한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답하기 곤란하다. 마을 이장의 것인가? 마을 노인회 것인가? 아니면, 부녀회 소유인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을의 것’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 모두의 공유재산이어서 규칙을 정해 공동으로 이용한다.


읍이나 면마다 한 개쯤은 있는 수십억 원짜리 건물이 법률상 ‘공유재산’이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에서 읍민 또는 면민 다수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유재산’이라고 인식되고, 그 용도와 이용 규칙을 주민들이 합의로 결정한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친김에, 그 건물을 시나 군 소유가 아니라 읍이나 면 소유로 할 수 있다면(현행 법제에서는 불가능한데, 시군 같은 지방자치단체는 법인격이 있지만 읍이나 면은 그렇지 않다), 읍면 지역사회 주민의 관리와 통제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결론은, 읍면 수준에서 주민자치가 실천되고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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